오늘부터 임신 12주째, 4개월에 접어들었다.
12주가 되자마자 거짓말처럼 입덧이 사그러들고 슬슬 미각과 입맛이 돌아오고있다.
임신출산 책에서 그렇다고 하더니 정말 그렇네.
내 몸은 참 평범하구나 세삼 놀라면서, 감사하다.
지난 한달 동안 임신초기 증상과 입덧 변화에 대해서 짧게 메모해둔 것을
옮겨서 기록해둬야겠다.
누군가에게 도움과 위로가 될지도 모르니까.
내가 그랬듯.
11월 17일(7주5일)
그나마 (억지로라도) 삼킬 수 있었던 '김치 쌀국수 컵라면'.
오늘은 그마저도 안된다.
뜨거운 물을 붓고 난 후 올라오는 종이컵 냄새가 확 역해서
토를 참으면서 바로 변기통으로 쏟아부었다.
몸무게가 매일 2~400그램씩 빠지고있다.
이래도 괜찮나?
11월 18일(7주6일)
열흘이 넘도록 쌀을 못 삼키고 있다.
냉장고만 열어도 '으으', 밥이 담겨있는 통만 봐도 '으으'.
나 때문에 남편까지 쫄쫄 굶는게 미안해서 저녁은 외식을 하자고 했다.
평소엔 없어서 못 먹는 곱창전골.
한입 떠먹자 마자 속이 울렁울렁울렁...
찰떡이가 곱창전골은 싫으시단다...
허겁지겁 잘 먹는 남편 앞에서 헛구역질 나오는거 삼키는라 죽는 줄.
11월 20일(8주1일)
점심에 갑자기 아주 강렬하게 '돼지고기 두루치기'(정확히 말하면, 국물없이 석쇠에 구워 불향이 살아있는...)
가 먹고 싶어서 남편한테 공주 곰골식당에 가자고 했다.
돼지고기 석쇠구이에 생선구이 시켜서 밥을 한공기 다 먹고 숭늉까지 클리어.
근 보름만에 '맛있다'는 감각을 느끼면서 밥을 먹었다.
배가부르니까 행복이 뭐 멀리있나 싶다.
11월 21일(8주2일)
어제 저녁엔 볼이 쏙 들어갈 정도로 시큼한 김치찌개(정확히 말하면, 묵은지가 완전히 익어서 노곤노곤한...)
를 먹고 싶었으나 실패했다.
맛집이라는 김치찜집에 갔는데 맛이 너무 달고 한약 냄새가 역했다.
평소엔 아무렇지 않던 옅은 향도 이렇게 괴로워지는구나.
11월 24일(8주5일)
입덧은 점점 설상가상...
어제까지는 공복 울렁거림이었다면,
이젠 그냥 눈 뜨고 있을땐 계속 울렁거림. -_-
한여름 대낮에 소주 다섯병 먹고 울릉도가는 통통배에 타고있는 느낌?
욱욱...
11월 25일(8주6일)
어제까진 그냥 울렁거림만 극심했는데
오늘은 롤러코스터급 감정기복까지 추가요.
조금만 슬픈 얘기를 들어도 눈물이 그렁그렁.
알쓸신잡 다시보기 하다가 그렇게 울 일이냐고...
귀찮다. 호르몬 놈.
내 속에 억지로(..) 밥 넣는 방법을 터득했다.
밥 먹기 싫어하는 애한테 밥을 먹이듯,
숟가락에 밥 올리고, (뭐든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반찬을 올려서
한입에 왁 넣는다.
대충 삼킬 수 있는 만큼 빨리 씹고 삼킨다.
더 울렁거려지기 전에 서둘러서 계속 먹인다.
도저히 안 넘어가고 목에서 맥힐때는 오렌지 주스를 한 모금 마셔서
밥을 넘긴다. 꾸울꺽.
언제쯤 미각이 돌아오는걸까...
11월 30일(9주4일)
갑자기 파파존스 페퍼로니 피자+치즈추가에 꽂혔다.(다른 피자 아님, 정확히 이거임)
이틀 연속으로 아침, 점심, 저녁에 피자를 먹고
오늘은 또 '치즈오븐스파게티'가 먹고 싶어서
다 저녁에 부랴부랴 매장을 찾아가서 먹었다.
소름끼치는 건 이 시기에 아기가 칼슘이 많이 필요하다고...
우리 찰떡이가 칼슘이 필요했구나.
그래서 엄마한테 치즈를 막 먹였구나.
...기분이 묘하다.
12월 3일(10주0일)
요즘 발생한 문제. '치핵'
앉아서 오래 일하는 직종이라 예전에도 종종 변기가 빨갛게 물든 적이 있었지만,
이번엔 좀 느낌이 다르다.
오늘 아침엔 진짜 쌩피가 철철 나서 당황...
보통 임신 중후기로 넘어가면 생긴다는데 난 벌써 치핵이 시작됐다니.
요며칠 태아보험 알아본다고 오래 앉아있어서 그런가. 제길 ㅜㅜ
메슥거림도 점점 심해지고. 몸이 만신창이다.
12월 9일(10주6일)
지난 며칠동안 새벽에 배통증이 심하다.
원인을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저녁을 너무 배부르게 먹었거나,
소변이 많이 차거나 가스가 차면 배가 아픈 것 같다.
배가 아플때 기운을 쥐어짜서 화장실을 한번 다녀오면 좀 괜찮아진다.
새벽 3시에 일어나서 대변을 본 적도...
과식하지말고 가스차는 음식(탄산, 밀가루..)를 자제해야겠다.
식욕, 성욕, 수면욕 세가지가 전혀 충족이 안되니
우울하고 무기력하다.
계속 나랑 비슷한 주수에 사람들이 쓴 글을 찾아 보면서
'나만 이런게 아니야'라면서 위안을 찾는 중.
그럼에도 문득문득 불경스럽게도 '임신 취소하고 싶은 심정!!'이라는
비명이 올라온다. 이후에 오는 죄책감도 내 몫.
결국 밤에 질질짜면서 남편한테 징징거렸다.
12월 11일(11주0일)
오늘은 진짜 오랜만에 루이보스 차를 마실 수 있었다!
아침 메뉴도 항상 먹던 것 처럼 먹을 수 있었고!
아침 울렁거림과 하루종일 계속되는 미세한 메슥거림,
두통과 고관절통(환도선다)는 여전하지만,
원래 즐겨 먹던 음식을 원래 알던 맛으로 먹을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엄청난 진전이다.
아이고 찰떡이님 감사합니다. 넙( _ _ )죽
오늘 일이 좀 몰려서 오래 앉아 일했더니 확실히 배가 땡긴다.
배가 땡기면 바로 누워서 쉬라는 신호라기에
알람 맞춰놓고 다락방으로 기어올라가서 쉬다 내려오고 반복했다.
12월 12일(11주2일)
오늘은 어제보다 살짝 미각이 더 돌아온것 같아서 과감한 도전을 해봤다.
'삼겹살'!!!
세종에서 삼겹살 제일 맛있는 거부장에 갔는데
평소에 느끼던 맛의 10분의 1정도만 겨우 느끼며 몇 점 먹었다. 질겅질겅...
같이 나온 청국장이 맛있어서 다행히 밥 한공기 뚝딱.
12월 13일(11주3일)
저녁엔 갈비탕을 먹었다. 먹을때는 꽤 맛있게 먹었는데 너무 과식했는지
아니면 갑자기 소고기가 들어가서 위가 놀랬는지...
자정이 다되도록 소화가 안되고 채기가 올라와서 혼났다.
헛구역질도 여러차례.
토하면 너무 힘들 것 같기도하고 오랜만에 영양가(?) 높은 음식을 먹었는데
게워내기가 아까워서 꾹꾹 참았다.
살아야한다.
(이 생존 의지는 나의 것인가, 찰떡이의 것인가.)
12월 16일(11주6일)
미각이 조금 돌아오고, 밥을 조금씩 먹을 수 있게 되면서
다음 고비가 시작된 것 같다.
그건바로 '불면증'
임신 전에는 잘 자고 수면패턴도 아주 좋았다.
걱정이 많아서 잠을 못자는 일이 뭔지 잘 모르는 속편한 인간이었달까?-_-?
요즘에도 평소처럼 10시만 되면 눈은 감기는데
시큰거려서 잘 떠지지도 않는데
잠이 안든다.
와나 미치고 팔짝뛰겠...
책도 봤다가 넷플릭스도 봤다가 팟캐스트도 들었다가
한시간, 두시간, 세시간 넘게 뒤척뒤척. @_@
그 시간이 정말 피곤하고 답답하다.
겨우겨우 잠에 들었다가 몸을 돌릴때면
관절통 때문에 또 깨고...
한달이 넘도록 밥도 못 먹어, 잠도 못자, 몸 아파...
요즘 부쩍 예민해진 성질머리는 내 탓이 아닌걸로. (아마도)
이만 나에게 밥 먹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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