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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이 컨텐츠/[난임]네가 우리에게 오는 시간

(1)네가 우리에게 오는 시간

by 한여름 2019.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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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8년째지만 '아이를 갖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자연스럽게 생기면 좋고, 그게 아니라면 굳이 '의학적'으로 가질 필요까지 있으려나-생각했다.

나보다 훨씬 늦게 결혼한 친구가 허니문 베이비를 잉태했을 때도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갑작스러운 임신-출산-육아로 결혼 이전과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내야 하는 친구를 보면서

'내 일이 아니길 천만다행'이라고 안도했던 게 사실이다.(경미야 미안)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나 스스로도 감당이 안 될 정도로 강력하게

'우리의 아이를 갖고 싶다' 는 감정이 솟구쳤다.

나는 일단 이 낯선 감정에 원인을 찾아야 했다.

 


 

1. 아주아주 용한 도사님의 인셉션

 

올해 초에 남편과 함께 "아주아주 유명한 도사님"을 찾아가 사주를 봤다.

교회 권사님인 시엄니가 아시면 뒷 목 잡고 쓰러지실 얘기지만,

그만큼 답답한 일이 쌓여있었다.

아무튼, 그때 도사님이 먼저 자식 얘기를 꺼냈다.

(자식 얘기는 묻지도 않았는데)

 

"자식 기운이 쎄서 엄마(나)를 누르고 있다. 그래서 자식이 아주 귀하다. 

그런데 기해년(올해)에 자식이 들어설 운이 있다. 노력하면 생길 것이다."

 

상담(?)을 마치고 나올 때 도사님이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면서

 

"순산하세요~" 하며 배웅하는데 기분이 묘했다.

 

사실, 그 말을 듣고 무척 기뻐하고 있는 내 감정이 제일 묘했다.

남편 역시 기분이 방방 뜨는 게 느껴졌는데

마치 방금 산부인과에서 '임신입니다'라는 말을 들은 '예비 아빠' 같은 얼굴이었다.

 

아, 나랑 남편은 아이가 생기는 게 기쁘구나.

 

 

2. 도련님 가족의 깜짝 방문

 

지난 7월.

시어머니의 여동생, 그러니까 남편의 이모 아들. 나에겐 도련님이 깜짝 방문했다.

서로 왕래가 거의 없는 편인데 청주서 가족 행사가 있어서 온 김에 세종인 우리 집에도 들렀단다.

도련님 가족은 아내와 네 살 된 딸, 이제 곧 돌이 되는 아들로

그야말로 대한민국 표준 4인 가족이다.

 

우리 집 거실에서 그 4인이 서로 부둥켜안고 뒹굴면서 꺄르르 거리는 걸 보는데...

뭐라고 설명해야 정확할까.

시기? 질투? 부러움? 

이 모든 감정이 뒤섞여 소용돌이쳤다. 

좀처럼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는 일이 없는 성격이라 

순간 울컥 치솟는 낯선 감정이 당황스러웠다.

 

도련님 가족이 돌아간 후, 다시 조용하고 깨끗해진 우리 집이 안락하게 느껴지면서도

부러운 마음, '우리의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결국 그날 새벽까지 뜬 눈으로 뒤척였다. 

 

아, 난 아이가 있는 삶을 동경하는구나. 

 

 

3. 지금이 아니면 정말 늦으리

 

매달 정기 모임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

글쓰기 모임에서 만나 말이 잘 통하는 사람들인데 30대(나 포함) 둘, 40대 하나, 50대 하나 총 4명이다.

모여서 맛있는 것도 먹고 차도 마시고 책과 영화 얘기도 나누는 수다 모임이다.

 

그중 특히 마음이 잘 맞는 40대 ㅅ쌤도 아이가 없는데, 지금까지 특별히 갖고 싶은 생각이 없었고

'그래야 하니까'라는 주변 얘기에 휩쓸려서 아이를 갖고 싶지는 않았다고 했다.

나도 비슷한 생각이라 공감이 갔다.

 

그런데 지난 8월 모임에서, ㅅ쌤 역시 얼마 전부터 갑자기 강력하게 아이가 갖고 싶어 졌노라고 마음을 털어놨다.

자연임신이 어려운 상태라 난임치료도 시작했는데 나이도 많고 몸도 건강하지 않은 편이라

임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눈물을 보였다. 

기적적으로 임신이 된다고 해도 노산이라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을지 두렵다고 했다.

ㅅ쌤의 마지막 말은 '조금 더 일찍 이런 생각을 했으면 좋았을텐데'였다.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나도 적은 나이가 아닌데. 나보다 12살이나 많은 분은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데 난 뭘 하고 있나.

지금 보다 더 늦으면, 정말로 원할 때는 가질 수 없겠구나. 덜컥 겁이 났다.

 

아, 난 아이를 갖지 못한다는 걸 이렇게 두려워하는구나.

 


 

아이가 생긴다는 말이 기쁘고, 아이가 있는 사람이 부럽고, 아이를 갖지 못하는 게 두렵다면

더 이상 '언젠가 생기겠지' 같은 안일한 생각만 하고 앉아있을 수 없었다.

남편에게 나의 감정 발달 3단계를 설명하고 '아이를 갖고 싶다'고 선언했다.(몸을 베베 꼬면서)

 

나와 남편은 결정이 빠르고 손발이 잘 맞고 행동력이 좋다.

 

우린 아이를 갖기로 결정했고, 가장 확률이 높은 시험관 아기 시술을 받기로 했다.

 

앞으로 이 공간에는 그 과정을 기록하려고 한다.

이렇게 글로 적어야 나도 기억하기 좋고,

우리 엄마에게 길-게 설명하지 않고 링크만 보내주면 되니까 편할 것 같다.

아니 그것보다 이 과정을 우리 엄마가 상세하게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이때가 아니면 내가 평생 엄마한테 어리광을 부려볼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간략하게 쓰려고 했는데 첫 글이 길었다.

다음부턴 기록 위주로 간략하게 적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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