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거/영화

[좋아하는 영화]안경(メガネ, Megane , 2007)

한여름 2022. 1. 31.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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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가미 나오코'의 2007년 작 <안경>. 이 영화의 시작은 일본의 외딴섬, 작은 공항에서 큰 캐리어를 질질 끌며 들어오는 주인공을 비추며 시작된다. 이 섬으로 온 이유가 ‘전화가 터지지 않는 곳이라서’라고 말하는 그녀는 개인주의적이고 차가운 인상이지만 왠지 모르게 좀 쓸쓸해 보이기도 한다. 

 

그녀의 눈엔 이 섬에 사는 사람들이 좀 이상해 보인다. 관광객도 거의 없는 오지 같은 섬에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면서, 간판이라고는 손바닥만 한 걸 걸어놓고는 ‘간판이 크면 손님이 많이 올까 봐’라고 하는 남자. 바다 앞 모래사장에서 오로지 빙수(그것도 얼음, 팥, 시럽만 들어간)만 팔면서 빙수 값으로는 우크렐레 연주, 접은 색종이 같은 걸 받는 요상한 분위기의 아줌마. 보통 일본인이 갖고 있는 ‘스미마셍’ 어법과는 다르게 따박따박 돌직구를 던지는 젊은 선생.

 

모처럼 온 여행이니 이상한 사람들은 무시하고 제대로 즐겨보자고 마음을 다잡은 그녀는, 게스트 하우스 주인에게 이 섬에 관광할 만한 건 뭐가 있냐고 묻지만 ‘이 섬에서는 그냥 젖어 드는 것'이라는 황당한 얘기만 돌아온다. 이런 낯선 분위기에 답답함을 느꼈던 그녀는 차츰차츰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동화되면서 ‘젖어드는 것'에 대해서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좀 더 적극적으로 그 시간과 공간에 젖어 들어간다. 그제야 비로소 그녀의 마음속에도 평온이 찾아오고 사람들과 느슨하게 어우러지는 삶에서 의미를 느낀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에 여유는 ‘시간 낭비’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도시에 우리들은 하루 중 마음껏 시간을 낭비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생각하다가, 나의 지난 도시 생활을 곱씹어보니 ‘거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어쩌면 그래서 병이 났던 것 같다. 몸에도 마음에도.

 

몇해 전, 이 산속에 집을 짓고 하고 싶었던 수많은 일 중에 최우선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구름 보면서 동물 모양 찾기,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듣기, 흙바닥으로 떨어지는 빗물 바라보기, 석양이 질 때 변하는 하늘빛 관찰하기’ 등등. 그동안 내가 누리지 못했던 나만의 시간을 아주 사치스럽게 낭비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고 나면 내 머리와 가슴속에 가득 들어차 있는 것들이 덜어지고, 버려도 될 것들은 버려질 테니 그 틈에 새로운 걸 채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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